
하늘을 나는 거대한 나무 배: 하워드 휴즈의 집념, ‘H-4 허큘리스’
“나무로 만든 비행기가 750명을 태우고 난다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미친 프로젝트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이자 억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는 기어코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행기(날개 폭 기준) 타이틀을 반세기 넘게 지켰던 전설의 비행기, 휴즈 H-4 허큘리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개발 배경: “잠수함을 피해 하늘로 물자를 날라라”
H-4 허큘리스의 탄생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절박한 상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U보트의 위협: 1942년,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하던 연합군의 수송선들이 독일 잠수함(U보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격침당하고 있었습니다. 바닷길이 막히자 연합군은 **”하늘로 대규모 병력과 탱크를 나를 수 있는 초대형 수송기”**를 원했습니다.
알루미늄 부족: 문제는 전쟁 중이라 비행기 제작에 필수적인 ‘알루미늄’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전략 자원인 금속을 쓰지 말 것”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걸었습니다.
드림팀의 결성: ‘선박왕’ 헨리 카이저(Henry Kaiser)의 아이디어와 ‘항공 괴짜’ 하워드 휴즈의 기술력이 만났습니다. 그들은 금속 대신 나무를 사용하여 거대한 비행정을 만들기로 계약합니다.
2. ‘스프루스 구스’의 독보적인 특징
H-4 허큘리스는 당시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① 금속이 아닌 나무로 만들다 (Duramold 공법)
알루미늄을 쓸 수 없었던 하워드 휴즈는 자작나무(Birch) 합판을 얇게 켜서 겹겹이 쌓고, 강력한 수지(Resin)로 접착한 뒤 열을 가해 성형하는 ‘듀라몰드(Duramold)’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스프루스 구스?: 언론은 나무 비행기라고 비꼬며 ‘스프루스 구스(가문비나무 기러기)’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가문비나무가 아니라 자작나무가 주재료였습니다. (하워드 휴즈는 이 별명을 끔찍이 싫어했다고 합니다.)
강도: 이 공법으로 만든 동체는 금속만큼 튼튼했고, 매끄러운 표면 처리가 가능해 공기 역학적으로도 우수했습니다.
② 압도적인 크기 (Wingspan)
이 비행기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날개 폭: 무려 97.54m입니다. 이는 최신형 초대형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약 80m)보다 훨씬 넓으며, 2019년 스트라토런치가 등장하기 전까지 70년 넘게 세계 최대 날개 폭 기록을 보유했습니다.
수송 능력: 완전 무장한 병력 750명 또는 30톤급 M4 셔먼 탱크 2대를 실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③ 8개의 거대한 엔진
이 거체를 띄우기 위해 프랫 앤 휘트니(P&W)의 R-4360 와스프 메이저 엔진을 무려 8개나 장착했습니다. 각 엔진은 3,000마력의 힘을 냈습니다.
3. 단 한 번의 비행: 1947년 11월 2일
개발이 지연되면서 전쟁은 이미 끝나버렸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끊기고, 언론은 “세금 낭비”, “날지 못하는 나무 덩어리”라고 비난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하워드 휴즈는 청문회 도중 비행장으로 달려가 직접 조종간을 잡습니다.
운명의 날: 1947년 11월 2일, 캘리포니아 롱비치 앞바다. 수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엔진 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륙: 휴즈는 예고 없이 스로틀을 끝까지 밀었고, 거대한 H-4 허큘리스는 수면을 박차고 올랐습니다.
기록: 비행은 짧았습니다. 고도 21미터(70피트)로 **약 1.6km(1마일)**를 26초간 비행한 뒤 착수했습니다. 비록 지면 효과(Ground Effect)를 받은 낮은 비행이었지만, **”이 괴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엔 충분했습니다.
4. 그 후의 이야기: 박물관의 전설이 되다
이 첫 비행 이후, H-4 허큘리스는 다시는 하늘을 날지 않았습니다.
휴즈의 집착: 하워드 휴즈는 이 비행기를 창고에 넣어두고, 자신이 죽을 때(1976년)까지 매년 거액을 들여 언제든 다시 날 수 있는 상태로 정비하고 관리했습니다. 일종의 거대한 애장품이 된 셈입니다.
현재: 현재는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에버그린 항공 우주 박물관(Evergreen Aviation & Space Museum)**에 전시되어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 휴즈 H-4 허큘리스 제원
승무원: 3명 (조종사 2, 항공기관사 1)
길이: 66.65 m / 날개폭: 97.54 m / 높이: 24.18 m
중량: 약 180톤 (이륙 중량)
엔진: P&W R-4360 Wasp Major 28기통 성형 엔진 x 8기
재질: 자작나무 합판 (Duramold 공법)
비행 횟수: 1회 (1947년)
마무리하며
휴즈 H-4 허큘리스는 전쟁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항공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학적 도전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금속 없이 나무로 만든 200톤짜리 비행기.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자 했던 인간의 집념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