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1차 대전 최강의 전투기, 포커 D.VII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휴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협정문(Article IV)에는 아주 특이한 조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통은 ‘전함’, ‘잠수함(U-boat)’, ‘대포’ 등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유독 특정 비행기의 이름을 거론하며 **”전량 양도하라”**고 명시한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포커 D.VII (Fokker D.VII)**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강력했길래 승전국들이 이 비행기의 씨를 말리려 했을까요? 오늘은 1차 대전 항공 기술의 정점(Zenith), 포커 D.VII에 대해 알아봅니다.
1. 개발 배경: “붉은 남작의 삼엽기는 이제 낡았다”
1917년 말, 독일 공군은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전설적인 ‘붉은 남작’이 타던 포커 Dr.I 삼엽기는 느렸고, 알바트로스 D.V는 구조적으로 약했습니다. 반면 연합군은 소프위드 카멜, SE5a, SPAD XIII 같은 고성능 신형기들로 독일을 압박하고 있었죠.
제1차 전투기 경연 대회: 다급해진 독일군은 1918년 1월, 베를린 인근 아들러스호프(Adlershof)에서 차기 주력 전투기를 뽑는 대회를 엽니다.
압도적인 우승: 수많은 시제기들이 경쟁했지만,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을 비롯한 일선 에이스들은 만장일치로 **포커 사의 시제기(V.11)**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곧 D.VII이 됩니다.
설계자: 이 기체는 안토니 포커가 아니라, 포커 사의 천재 설계자 **라인홀트 플라츠(Reinhold Platz)**가 설계했습니다.
2. 포커 D.VII이 ‘최강’이었던 기술적 이유
포커 D.VII은 겉보기에는 투박한 사각형 박스처럼 생겼지만, 그 안에는 당대 최고의 기술이 숨어 있었습니다.
① 캔틸레버(Cantilever) 날개: 선이 사라지다
당시 대부분의 복엽기는 얇은 날개를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철사 줄(Wire)을 얽어매야 했습니다. 이 줄들은 공기 저항(Drag)의 주범이었죠.
두꺼운 날개: 포커 D.VII은 날개 내부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고 두께를 키운 대신, 외부 지지 와이어를 싹 없애버렸습니다. (N자형 지지대만 존재)
결과: 공기 저항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급강하 속도가 빨라지고 비행 효율이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
② 강철 튜브 프레임
나무를 깎아 만든 다른 비행기들과 달리, 포커 사는 강철 튜브를 용접해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내구성: 튼튼해서 웬만한 피탄에도 견뎠고, 대량 생산이 쉬웠으며, 야전에서 망치와 용접기만 있으면 수리가 가능했습니다.
③ 마법의 심장: BMW IIIa 엔진
초기형은 메르세데스 엔진을 썼지만, 후기형(Fokker D.VIIF)에는 신형 BMW IIIa 엔진이 장착되었습니다. 이 엔진은 ‘과압축’ 기술을 사용하여 고고도에서도 출력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고도의 제왕: 연합군 비행기들이 높은 고도에서 공기가 희박해져 헐떡거릴 때, BMW 엔진을 단 D.VII은 오히려 더 펄펄 날아다니며 위에서 아래로 적을 찍어 눌렀습니다.
3. “프로펠러에 매달린다 (Hanging on the Prop)”
포커 D.VII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조종 특성이었습니다.
평범한 조종사를 에이스로: 조종이 매우 쉽고 안정적이어서, 갓 훈련소를 나온 신참도 베테랑처럼 싸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실속(Stall)이 없다: 당시 비행기들은 기수를 너무 급하게 들면 양력을 잃고 추락(실속)했습니다. 하지만 D.VII은 기수를 수직으로 세운 상태에서도 추락하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아래쪽의 적에게 사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프로펠러에 매달린다”**라고 표현했는데, 연합군 조종사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기술이었습니다.
4. 전설의 명언: “단 1대도 남기지 마라”
1918년 5월 전선에 등장하자마자 D.VII은 하늘의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Fokker D.VII은 독일의 패배를 6개월 이상 늦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죠.
결국 독일은 전쟁에서 졌지만, 연합군은 이 비행기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휴전 협정에 **”독일 공군의 모든 D.VII은 연합군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적의 무기 중 특정 모델을 콕 집어 압수한 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습니다.
💡 포커 D.VII 제원 요약
승무원: 1명
길이: 6.95 m / 날개폭: 8.90 m
엔진: 메르세데스 D.IIIa (160마력) 또는 BMW IIIa (185마력)
최고 속도: 189 ~ 200 km/h
상승 한도: 약 6,000 m (BMW 엔진 장착 시)
무장: 기수 상단 슈판다우(Spandau) 기관총 2정
마무리하며
포커 D.VII은 너무 늦게 등장해 조국(독일)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비행기가 좋은 전투기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한 기체였습니다. 1차 대전의 끝자락,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이 ‘네모난 비행기’는 항공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