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냥꾼과 표적: 포커 아인데커 vs. B.E.2
1915년 말부터 1916년 초까지 서부 전선의 하늘은 영국 왕립 항공대(RFC)에게 지옥이었습니다. 일명 **’포커의 공포(Fokker Scourge)’**라 불리던 이 시기, B.E.2와 **포커 아인데커(Fokker Eindecker)**의 만남은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사냥’에 가까웠습니다.
왜 B.E.2는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져야 했을까요? 당시 하늘에서 벌어졌던 전형적인 공중전 시나리오를 단계별로 재구성해 분석해 드립니다.
이 시뮬레이션은 1915년 겨울, 프랑스 상공 10,000피트(약 3,000m)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인 영국군 B.E.2c 1대와 이를 포착한 독일군 포커 E.III 1대의 상황을 가정합니다.
1단계: 발견과 접근 (The Stalking)
“등 뒤의 사신”
상황: B.E.2c는 전선 너머 독일군 포병 진지를 촬영하며 시속 100km/h 정도의 느린 속도로 수평 비행 중입니다.
B.E.2의 상태:
조종사 (뒷좌석): 지도를 확인하며 비행 경로 유지에 집중. 날개 때문에 아래쪽 시야가 차단됨.
관측수 (앞좌석): 카메라 렌즈를 맞추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바로 옆 지상만 보고 있음. 가장 중요한 후방은 조종사와 엔진, 날개 지지대에 가려져 보이지 않음.
포커 아인데커의 전술: 독일 조종사는 태양을 등지거나(눈부심 유발), B.E.2의 꼬리 날개 바로 아래쪽 사각지대(Blind Spot)로 조용히 접근합니다.
🚩 분석 포인트: B.E.2의 구조적 결함인 **’관측수가 앞에 앉는 배치’**는 후방 경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포커는 이미 사거리 안에 들어왔지만, 영국군은 자신의 뒤에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2단계: 공격 개시 ( The Attack run)
“조준경이 필요 없는 사격”
거리 100m: 포커 아인데커가 급강하하며 B.E.2의 후미를 잡습니다.
포커의 행동: 독일 조종사는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비행기 기수를 적기에게 일직선으로 맞춥니다.
발사: 타타타탕! 프로펠러 사이로 슈판다우 기관총이 불을 뿜습니다. 싱크로나이즈 기어(동조 장치) 덕분에 프로펠러 손상 걱정 없이, 기수가 향하는 곳으로 정확히 총알이 날아갑니다.
🚩 분석 포인트: 당시 연합군 비행기(예: 뷔커스 FB.5)는 기관총을 쏘려면 비행기 기수를 트는 것이 아니라, 사수가 몸을 비틀어 총을 조준해야 했습니다. 반면, **”비행기 자체가 곧 총”**이었던 포커는 비행 제어와 사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압도적인 우위를 가졌습니다.
3단계: B.E.2의 대응 실패 (The Failed Evasion)
“너무 안정적이어서 죽다”
B.E.2 조종사의 반응: 총소리를 듣고 기체가 흔들리자 공격받음을 인지합니다. 본능적으로 조종간을 옆으로 꺾어 회피 기동(Bank)을 시도합니다.
기체의 배신: 여기서 B.E.2의 ‘고유 안정성’이 발목을 잡습니다. 기체는 조종사의 급격한 조작에 저항하며 아주 천천히, 우아하게 선회합니다. 급선회가 불가능하니 포커의 조준선에서 벗어나는 데 한 세월이 걸립니다.
관측수의 절망: 앞좌석의 관측수는 루이스 기관총을 잡고 벌떡 일어납니다. 하지만 적은 **자신의 바로 뒤(6시 방향)**에 있습니다.
뒤로 쏘려니 조종사의 얼굴이 가로막습니다.
위로 쏘려니 윗날개가 가로막습니다.
옆으로 쏘려니 날개 지지대(Strut)와 와이어가 가로막습니다.
결과: 관측수는 총 한 번 제대로 못 쏴보고 무기력하게 당합니다.
4단계: 격추 (The Kill)
“임멜만 턴(Immelmann Turn)으로 마무리”
마무리: B.E.2의 엔진이나 조종사가 피탄됩니다. 기체는 연기를 뿜으며 추락합니다.
재공격 준비: 만약 첫 공격에서 격추하지 못했다면, 포커 조종사는 **’임멜만 턴’**을 구사합니다. 공격 후 그대로 상승했다가, 정점에서 기체를 뒤집어 다시 급강하하며 에너지를 보존한 채 재공격 위치를 잡습니다. 둔한 B.E.2는 시선을 놓치고 허둥대다 두 번째 공격에 끝장납니다.
📊 전술 데이터 비교표
| 구분 | 독일군: Fokker E.III | 영국군: B.E.2c | 결과 |
| 무장 방식 | 전방 고정 사격 (동조 장치) | 후방 방어 사격 불가 (구조적 결함) | 포커 절대 우세 |
| 조준 편의성 | 비행기 기수로 조준 (직관적) | 사수가 몸을 비틀어 조준 (어려움) | 포커 절대 우세 |
| 기동성 | 보통 (날개 비틀기 방식) | 최악 (과도한 안정성 설계) | 포커 우세 |
| 사각지대 | 후방 시야 나쁨 | 후방, 하방, 상방 모두 취약 | B.E.2 절대 열세 |
📝 총평: 기술이 전술을 압도하다
이 공중전 시나리오에서 B.E.2 조종사의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적을 보고 쏠 수 있는 비행기(포커)”**와 **”적을 볼 수도, 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비행기(B.E.2)”**의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극적인 학살은 영국군이 1916년, 기관총을 앞으로 쏘는 ‘DH.2’나 기동성이 뛰어난 ‘뉴포르 11’ 같은 신형기를 투입하고 나서야 멈추게 됩니다. B.E.2는 **’안정성이 전쟁에서는 곧 독이 될 수 있음’**을 뼈아프게 증명한 사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