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의 비밀 병기, MiG-15
1950년 11월, 한반도 압록강 상공. 미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 F-80 슈팅스타와 P-51 머스탱 편대는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마주합니다. 날개가 뒤로 젖혀진(후퇴익) 은색의 비행기들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미군기들을 농락하고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설적인 **’MiG 쇼크’**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군 정보부가 “소련은 아직 이런 걸 만들 기술이 없다”고 믿었던 그 시기, 소련은 어떻게 세계 최강의 제트 전투기 MiG-15를 만들어냈을까요?
1. 개발 배경: 적의 기술과 우방의 실수로 탄생하다
MiG-15는 냉전 초기, 아주 기묘한 기술적 결합으로 태어났습니다.
① 독일의 날개 (Aerodynamics)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은 독일의 항공 연구소에서 방대한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특히 독일이 연구하던 ‘후퇴익(Swept Wing)’ 데이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 발견: 날개를 뒤로 젖히면 공기 저항이 줄어들어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코얀 설계국은 이 독일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35도 각도의 후퇴익을 설계했습니다.
② 영국의 심장 (Rolls-Royce Nene Engine)
가장 큰 문제는 엔진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제트 엔진 기술은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 영국의 실수: 소련 설계자들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의 좌파 정권이 최신형 제트 엔진인 롤스로이스 닌(Nene) 엔진의 샘플과 설계도를 소련에 판매한 것입니다. (스탈린은 “어떤 얼간이가 자기네 비밀을 적에게 파느냐?”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 클리모프 VK-1: 소련은 이 엔진을 즉시 분해하고 역설계하여 **’클리모프 VK-1’**이라는 짝퉁 엔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강력한 심장이 MiG-15를 음속의 영역으로 밀어 올렸습니다.
2. MiG-15의 압도적인 특징
MiG-15는 세련된 서방제 전투기와 달리, “오로지 폭격기를 잡기 위해” 만들어진 투박하고 강력한 기체였습니다.
① 37mm 대포의 파괴력
미군 전투기들이 12.7mm 기관총을 쏠 때, MiG-15는 기수에 37mm 기관포 1문과 23mm 기관포 2문을 달았습니다.
- 목표는 B-29: 이 무시무시한 화력은 다른 전투기와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거대 폭격기 B-29를 단 한 방에 격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37mm 포탄 한 발에 B-29의 날개가 통째로 뜯겨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② 고고도의 제왕
MiG-15는 가벼운 기체와 강력한 엔진 덕분에 상승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 미군의 F-86 세이버가 헐떡거리는 고도 15,000m 상공에서도 MiG-15는 유유히 날아다녔습니다. 불리하면 위로 솟구쳐 도망가는 MiG-15를 미군기들은 닭 쫓던 개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③ 단순함의 미학
소련제 무기답게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튼튼했습니다. 비포장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했고, 정비가 쉬워 전선에서 높은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3. 한국전쟁과 ‘미그 앨리(MiG Alley)’
MiG-15가 전설이 된 곳은 바로 한반도의 하늘, 특히 압록강 유역의 **’미그 앨리(MiG Alley)’**였습니다.
- B-29 사냥: 전쟁 초기, 주간 폭격을 하던 B-29 편대는 MiG-15에게 무참히 도륙당했습니다. 결국 미군은 “B-29의 주간 비행 금지”를 선언하고 야간 폭격으로 전환해야만 했습니다. ‘하늘의 요새’ B-29의 자존심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 영원한 라이벌, F-86 세이버: 미군은 급하게 최신형 전투기 F-86 세이버를 투입했습니다.
- MiG-15 우세: 상승력, 고고도 비행 능력, 화력
- F-86 우세: 급강하 능력, 안정성, 조준 장치, 조종사의 숙련도
- 결과: 두 기체는 서로의 꼬리를 물며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습니다. 기체 성능은 MiG-15가 근소하게 앞섰지만, 미군 조종사들의 뛰어난 실력 덕분에 격추 비율은 미군이 우세했습니다.
💡 MiG-15bis 제원
- 승무원: 1명
- 길이: 10.10 m / 날개폭: 10.08 m
- 엔진: 클리모프 VK-1 원심식 터보제트 (5,950 lbf 추력)
- 최고 속도: 1,076 km/h (마하 0.9)
- 상승 한도: 15,500 m
- 무장: 37mm N-37 기관포 1문(40발), 23mm NR-23 기관포 2문(80발)
- 별명: Fagot (NATO 코드명 – ‘장작다발’이란 뜻)
마무리하며
MiG-15는 서방 세계에 “소련의 항공 기술을 얕보지 말라”는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진 기체였습니다. 영국의 엔진과 독일의 날개, 그리고 소련의 대포가 만나 탄생한 이 걸작은, 제트기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가장 강렬한 신호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