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대전

세계 1차 대전

전쟁은 본격적인 항공기의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참호전에 정찰용으로 활용되다 점차 공중전의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 1차 세계대전과 항공기의 본격 등장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은 산업화된 과학기술이 본격적으로 군사무기에 적용된 첫 대규모 전쟁 중 하나였다. 탱크, 독가스, 기관총 같은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고, 항공기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항공기는 초기에는 전장의 지형, 병력 배치, 적 진지의 위치 등을 살피는 정찰용 수단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당시 지상군이 참호전에 묶인 채 서로 밀고 밀리는 상황에서, 하늘에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한다는 것은 엄청난 정보의 우위를 갖게되는 것이였다. 

이후 전쟁이 깊어지면서 항공기의 용도는 확대되었다. 정찰에 그치지 않고 폭격, 그리고 공중전(비행기 간 전투)이 등장했다. 무기로 기관총을 장착한 전투기가 생겨났고, 공중 우세를 잡기 위한 기술 경쟁이 시작되었다.이처럼 1차 대전은 “처음으로 항공기가 전면전에서 실질적으로 사용된 전쟁”이었다. 항공기는 단순한 실험 기계가 아니라, 전략과 전술의 한 축이 되었다.

✈ 세계 1차대전 항공기의 특징

당시 항공기가 가졌던 구조적 특징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그 이유는 기술과 자재, 당면한 조건 때문이었다.

나무골격 + 천(캔버스) 피복

대부분의 WWI 항공기는 가볍게 만들기 위해 목제 구조(frames) 위에 천이나 캔버스(또는 얇은 합판)를 씌우는 방식을 썼다. 이는 무게를 줄이는 동시에 제작과 수리가 쉬웠다.

복엽기(biplane) 혹은 삼엽기(triplane)

 하나의 날개로는 충분한 양력을 얻기 어려웠던 당시 엔진 출력과 재료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설계였다. 날개를 두 겹(복엽) 또는 세 겹(삼엽)으로 쌓아 양력을 확보했다. 삼엽기는 특히 짧은 날개폭으로 기동성을 확보하면서도 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안이었다. 

큰 바퀴와 단순 착륙장치

당시에는 전용 활주로가 거의 없거나, 진흙·자갈·흙길이 많았다. 따라서 지면 착륙 및 이륙을 견딜 수 있도록 바퀴가 크고 단순한 고정형 착륙장치(fixed undercarriage)가 일반적이었다. 

경량화 중심 & 낮은 속도

전체 구조가 가볍고 엔진 출력도 제한적이어서, 속도나 고도, 항속거리 모두 오늘날 대비 매우 낮았다. 하지만 무게를 줄여 활공성·양력을 확보하려 했다. 

단순한 도색과 국가식 표식

항공기는 전장에서 식별이 중요했다. 적과 아군을 분간하기 위해, 짙은 위장보다는 단색이나 국가별 식별 마크(십자, 둥근 원, 동그라미 안의 색 등)를 날개나 꼬리, 동체에 크게 그려 넣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분은 기록이 다양하지만, 당시 전투기 사진들을 보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설계는 오늘날의 금속제 고성능 전투기와 비교하면 매우 원시적이고 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914~1918년의 기술, 자원,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매우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타협이었다. 덕분에 대량 생산과 유지, 보수가 가능했고,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항공기를 실용화할 수 있었다.

✈ 최초의 항공기는 전쟁중 정찰이 주 목적이였다.

Sopwith Camel (영국)

Camel은 1916년 개발이 시작되어 1917년부터 실전 투입된 영국의 주요 전투기였다. 
구조는 당시 표준대로 목재 골격 + 천 피복 + 복엽기 구조였으며, 무게 중심이 동체 앞쪽—엔진, 조종사, 탄약 등이 7피트(약 2.1 m) 구간에 집중돼 있었다. 이로 인해 조종 민첩성이 높아졌다. 

Camel의 가장 큰 특징은 프로펠러 앞에 설치된 두 정조준 기관총(Vickers machine gun)이다. 당시 새로 도입된 동기장치(synchronization gear) 덕분에 회전하는 프로펠러를 피하면서 총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는 비행기를 단순한 정찰기가 아닌 ‘공중 전투기’로 전환한 기술적 전환점이다. 

복엽기 구조와 로터리 엔진, 앞쪽 집중된 무게 배치 덕분에 Camel은 기동성이 우수했지만, 조종 난이도도 높았다. 특히 피치·롤 변화가 급격하고 스핀에 빠지기 쉬워, 초보 조종사에게는 위험한 기체였다. 
Camel은 연합군 측에서 가장 많이 격추 기록을 세운 전투기 중 하나였고, 많은 전투 조종사가 이 기체를 통해 승리를 거뒀다.

Fokker Dr.I (독일) — 삼엽기의 상징

Fokker Dr.I는 1917년부터 서부전선에 등장한 독일의 삼엽 전투기로, 특히 Manfred von Richthofen (붉은 남작)이 탑승하며 공전의 명성을 얻었다. 
삼엽기 설계는 짧은 날개폭으로도 충분한 양력을 확보하고, 동일한 날개 면적으로 복엽기보다 더 높은 양력을 내면서도 기동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Dr.I는 경량 목재 + 캔버스 구조였고, 110 hp급 로터리 엔진을 사용했다. 기동성과 상승률이 뛰어나 근접전, 급격한 선회, 어뢰처럼 적기를 급습 후 도망치는 전술에 매우 유리했다. 다만 삼엽기의 구조적 불안정성과 낮은 속도, 비행 안정성의 한계 등으로 인해 유지 기간은 짧았고, 전쟁 후반에는 더 빠르거나 안정적인 전투기로 대체되었다.

✈ 항공기의 전쟁 속 역할 변화

초기 WWI에서는 항공기가 정찰, 관측용으로 쓰였다. 당시 카메라나 무거운 통신장비는 무거워서 실전에는 거의 탑재되지 않았고, 조종사 또는 관측병이 착륙 후 지상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많았다.전쟁이 장기화하고 참호전이 이어지면서, 항공기를 통한 폭격과 지상 공격의 수요가 생겼다. 비교적 단순한 폭탄을 싣고 지상 시설을 노리는 ‘경폭격기(light bomber)’가 등장했다. 일부 항공기는 병력 수송이나 통신 전달용으로도 쓰였다.

동시에, 공중에서 다른 적 항공기를 격추하기 위한 공중전(도그파이트) 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기관총을 장착한 전투기들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 변화는 항공기를 단순한 정찰 수단이 아니라, 하늘의 지배권을 위한 무기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1차 세계대전 항공기가 항공사에서 중요한 이유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전쟁을 목적으로 많은 비행기가 만들어 졌다. 비행기를 실험하는 단계에서 상업 비행의 흐름이 아닌 인류 역사에 항공의 군사화(Air Warfare)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항공사에서 중요하다. 항공기를 통한 정보(정찰), 폭격, 전투기라는 다각적인 항공기의 역활이 생겼고 비행기의 구조와 설계, 무장, 전술까지 항공기 운영에 대한 공학과 과학 그리고 전략이 빠르게 진화 하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기는 더욱 발전하 였도 민간 항공사의 탄생과 항공기의 상용화 시대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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