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넬 더글라스의 마지막 유산: ‘보잉 717’

✈️ 맥도넬 더글라스의 마지막 유산: ‘보잉 717’

공항에서 비행기 꼬리 부분에 엔진이 달린 작은 제트기를 보신 적 있나요? “어? 저거 MD-80인가? DC-9인가?” 하고 보는데, 조종석 창문(Eyebrow window)이 없고 세련된 느낌이 난다면, 그건 십중팔구 보잉 717입니다.

이 비행기는 보잉이 직접 설계하지 않았지만, 보잉의 이름으로 팔린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입니다. 오늘은 족보가 꼬였지만 실력만큼은 진짜였던 717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 개발 배경: “MD-95, 보잉의 717이 되다”

보잉 717의 원래 이름은 MD-95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 맥도넬 더글라스(MD) 사는 자신들의 효자 상품인 DC-9-30을 대체할 100석 규모의 현대적인 단거리 여객기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 MD의 몰락과 합병: 하지만 1997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맥도넬 더글라스는 경쟁사인 보잉에 인수 합병됩니다.
  • 살아남은 막내: 보잉은 합병 후 MD의 라인업(MD-11, MD-80/90)을 대부분 단종시켰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개발 막바지였던 MD-95는 살려두었습니다.
    • 이유: 보잉의 737 시리즈 중 가장 작은 737-600보다 더 경제적인 ‘100인승 시장’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 이름 변경: 보잉은 이 기체에 비어있던 넘버링인 717이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 (원래 717은 군용 공중급유기 KC-135의 사내 모델명이었으나, 민간기 라인업 정리를 위해 재사용했습니다.)

2. 보잉 717의 독특한 특징

보잉 717은 겉모습은 영락없는 DC-9이지만, 속은 완전히 21세기형 하이테크 비행기입니다.

① 롤스로이스 BR715 엔진: “조용하고 강력하다”

이전의 DC-9이나 MD-80 시리즈는 시끄러운 프랫 앤 휘트니 엔진(JT8D)을 썼지만, 717은 독일 BMW와 영국 롤스로이스가 합작한 BR715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 저소음: 덕분에 “기름 먹는 하마”이자 소음 공해의 주범이었던 형님들과 달리, 매우 조용하고 연비가 뛰어납니다. (단, 엔진이 뒤에 있어 뒷좌석 승객은 좀 시끄럽고, 앞좌석 승객은 세상 조용합니다.)

② 최첨단 글래스 콕핏 (Glass Cockpit)

외형은 1960년대 디자인이지만, 조종석은 보잉 737NG나 777 못지않게 현대적입니다.

  • 6개의 LCD 화면: 아날로그 계기판을 싹 걷어내고, 하니웰(Honeywell) 사의 대형 LCD 디스플레이 6개를 장착했습니다. 이는 조종사의 업무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습니다.

③ 승객이 사랑하는 2-3 배열

보잉 737이나 A320은 3-3 배열이라 가운데 끼인 승객이 고통받습니다. 하지만 717은 동체가 좁아 2-3 배열입니다.

  • 장점: 전체 좌석의 80%가 창가석이거나 복도석입니다. 가운데 끼는 자리는 한 줄에 딱 1개뿐이라 승객 선호도가 매우 높습니다.

④ T자형 꼬리 날개와 후방 엔진

DC-9 가문의 상징인 T-테일동체 후방 엔진 구조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 날개에 엔진이 없어서 지상고가 낮아 탑승 계단(Airirstair)을 내장할 수 있고, 공항 설비가 부족한 소형 공항에서도 운용하기 좋습니다.

3. 짧지만 강렬했던 생산, 그리고 단종

보잉 717은 성능은 훌륭했지만, 시장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습니다.

  • 판매 부진: 2001년 9.11 테러 이후 항공 시장이 얼어붙었고, 항공사들은 717 대신 더 작은 리저널 제트(CRJ, ERJ)를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 팀킬: 게다가 보잉 내부에서도 “737 팔아야 하는데 717이 걸리적거린다”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 단종: 결국 2006년, 총 156대 생산을 끝으로 단종되었습니다. 보잉의 마지막 롱비치 공장(구 맥도넬 더글라스 공장) 문을 닫게 만든 기체이기도 합니다.

4. 현재의 위상: “중고차 시장의 숨은 보석”

새 비행기로서는 실패했지만, 중고 비행기로서는 없어서 못 구하는 명품이 되었습니다.

  • 튼튼한 내구성: 맥도넬 더글라스 특유의 “쇳덩이처럼 튼튼한 설계” 덕분에 고장이 잘 안 납니다. 하루에 수십 번 이착륙하는 단거리 노선(아일랜드 호핑)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 주요 운용사:
    • 델타 항공 (Delta Air Lines): 전 세계 717의 절반 이상을 싹쓸이해서 운용 중입니다.
    • 하와이안 항공 (Hawaiian Airlines): 하와이 섬들 사이를 연결하는 주력기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최근 717을 대체할 기종을 찾느라 고민 중이라고 합니다.)

💡 보잉 717-200 제원

  • 승무원: 2명
  • 승객: 106명 (2클래스) ~ 117명 (1클래스)
  • 길이: 37.8 m / 날개폭: 28.4 m
  • 엔진: 롤스로이스 BR715-A1-30 터보팬 2기
  • 순항 속도: 마하 0.77 (811 km/h)
  • 항속 거리: 2,645 km (단거리용)
  • 특징: 보잉 마크를 달고 생산된 유일한 맥도넬 더글라스 혈통 여객기

마무리하며

보잉 717은 비록 많이 팔리지는 못했지만, 타본 사람들은 모두 엄지를 치켜세우는 비운의 명작입니다. DC-9부터 시작된 40년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기체는, 지금도 델타 항공과 하와이안 항공의 도색을 입고 부지런히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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