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요격기, F.6 ‘라이트닝’

조종석 달린 로켓? 영국의 자존심이자 괴물 요격기, ‘라이트닝’

보통 비행기는 유선형의 날렵한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영국이 만든 이 전투기는 어딘가 이상합니다. 배불뚝이처럼 튀어나온 배, 위아래로 겹쳐진 엔진, 그리고 기괴할 정도로 꺾인 날개.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처럼 생긴 이 비행기의 이름은 **’라이트닝(Lightning, 번개)’**입니다. 이름 그대로 번개처럼 빨랐던, 아니 비행기라기보다는 **’사람이 탄 로켓’**에 가까웠던 이 전설적인 요격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개발 배경: “핵폭격기를 막으려면 수직으로 올라가라”

1950년대, 냉전의 공포가 극에 달했습니다. 영국은 소련의 초음속 핵폭격기(Tu-22 등)가 런던 상공에 나타날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 요격기의 조건: 레이더에 적기가 포착되면, 활주로에서 즉시 이륙해 적보다 더 빨리 고도 15,000m 이상으로 올라가 요격해야 했습니다. 즉, **’상승력(Climb Rate)’**이 생명이었습니다.
  • 마하 2의 도전: 영국은 초음속 연구기였던 P.1을 기반으로, 마하 2(음속의 2배)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순수 요격기 개발에 착수합니다.
  • 유일한 국산 초음속기: 라이트닝은 영국이 독자 개발하여 양산까지 성공한 유일한 마하 2급 전투기라는 역사적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2. 라이트닝의 기괴하고 독창적인 특징

라이트닝의 디자인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국만의 독특함(혹은 기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① 엔진을 위아래로 쌓다? (Vertical Staggered Engines)

가장 충격적인 특징입니다. 보통 쌍발 전투기는 엔진을 양옆(F-14, F-15)에 배치하거나 꼬리에 나란히(F-4) 놓습니다.

  • 수직 배치: 하지만 라이트닝은 공기 저항(전면 면적)을 줄이기 위해 엔진 두 개를 위아래로 포개어 넣었습니다.
  • 장점: 공기 저항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무시무시한 속도를 냈습니다. 한쪽 엔진이 꺼져도 기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없었습니다.
  • 단점: 정비사들에게는 지옥이었습니다. 아래쪽 엔진을 수리하려면 위쪽 엔진까지 들어내야 했고, 화재가 발생하면 두 엔진이 동시에 타버릴 위험이 컸습니다.

② 임산부 같은 배 (Ventral Tank)

라이트닝은 엄청난 속도를 내는 대신 연료 효율이 최악이었습니다.

  • 배불뚝이: 부족한 연료를 채우기 위해 동체 배 밑에 거대한 추가 연료 탱크를 달았습니다. 이 때문에 날렵한 상체에 비해 배가 불룩 튀어나온 독특한 실루엣을 갖게 되었습니다.

③ 60도의 후퇴익과 에일러론

날개 각도가 무려 60도로 꺾여 있습니다. 이는 오로지 고속 비행만을 위한 설계였습니다. 날개 끝에 있는 보조익(에일러론)은 날개와 직각으로 잘려 있어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3. 전설적인 성능: “F-15도 따돌리는 상승력”

라이트닝의 진가는 수직 상승할 때 드러납니다.

  • 로켓 같은 상승력: 이륙하자마자 애프터버너를 켜고 기수를 수직으로 세우면, 분당 50,000피트(약 15km) 속도로 솟구쳤습니다. 이는 동시대의 F-4 팬텀을 능가하는 것은 물론, 훗날 등장한 F-15 이글과 상승력 대결을 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성층권의 요격: 라이트닝은 고도 26,000m까지 올라가 정찰기 U-2를 요격 훈련했던 몇 안 되는 전투기 중 하나였습니다.
  • 슈퍼크루즈(Supercruise): 제한적이지만, 애프터버너 없이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슈퍼크루즈’가 가능했던 시대를 앞서간 기체이기도 했습니다.

4. 치명적인 단점: “주유소가 필요해”

하지만 ‘속도’에 모든 스탯을 몰빵한 탓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 최악의 항속 거리: 연료 소모가 너무 심해, 조종사들은 **”이륙하는 순간부터 착륙할 연료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전투 행동반경이 너무 짧아 ‘비행장 방어용’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습니다.
  • 빈약한 무장: 요격 임무에 특화되다 보니 공대공 미사일 2발(파이어스트릭 또는 레드탑)과 기관포가 무장의 전부였습니다.

💡 잉글리시 일렉트릭 라이트닝 F.6 제원

  • 승무원: 1명
  • 길이: 16.8 m / 날개폭: 10.6 m
  • 엔진: 롤스로이스 에이번 301R 터보제트 2기 (수직 배치)
  • 최고 속도: 마하 2.0 (2,415 km/h)
  • 상승 한도: 16,000 m 이상 (실제로는 26,000m 도달 기록 있음)
  • 무장: 30mm ADEN 기관포 2문, 파이어스트릭 또는 레드탑 미사일 2발
  • 별명: The Frightening (너무 빨라서 무섭다는 뜻의 언어유희)

마무리하며

잉글리시 일렉트릭 라이트닝은 영국 항공 산업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 타협하지 않는 공학적 고집으로 만들어낸 걸작입니다. 비록 짧은 다리(항속 거리)와 정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종사가 등 뒤에서 걷어차는 듯한 폭발적인 가속감을 느낄 수 있었던 ‘남자의 로망’ 같은 전투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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