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서 불쏘시개로: ‘제로센(Zero)’의 영광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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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서 불쏘시개로: ‘제로센(Zero)’의 영광과 몰락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진주만이 불타서가 아니었습니다. “동양인이 만든 비행기는 허접할 것”이라는 인종차별적 편견을 비웃듯, 일본의 전투기가 미군기들을 압도적인 성능으로 유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항속 거리와 기동성을 자랑했던 미쓰비시 A6M, 일명 ‘제로센(Zero Fighter)’. 오늘은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최강’의 자리에 올랐지만, 결국 그 다이어트 때문에 파멸한 제로센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개발 배경: “모든 것을 버리고 가벼워져라”

1937년, 일본 해군은 미쓰비시 사에 차기 주력 전투기(12시 함상전투기) 개발을 지시하며 말도 안 되는 요구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1. 속도: 시속 500km를 넘길 것.
  2. 항속 거리: 폭격기를 호위해 3,000km 이상 날아갈 것.
  3. 기동성: 기존의 복엽기만큼 날렵할 것.
  4. 무장: 강력한 20mm 기관포를 2문이나 달 것.

당시 엔진 기술로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수석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는 광기에 가까운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엔진 힘이 부족하다면, 비행기를 종이장처럼 가볍게 만들면 된다.”

2. 제로센의 특징: 극단적인 설계 철학

제로센은 ‘방어력’과 ‘안전’을 제물로 바쳐 ‘공격력’과 ‘비행 성능’을 얻은 비행기였습니다.

① 상식을 파괴한 경량화 (Extra Super Duralumin)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당시 일본이 개발한 신소재인 **초초두랄루민(ESD)**을 사용했습니다.

  • 뼈대 구멍: 기체 내부 뼈대에 구멍을 숭숭 뚫어 무게를 그램(g) 단위로 깎아냈습니다.
  • 방어 장갑 제거: 조종사를 보호하는 등 뒤의 방탄판도, 연료 탱크가 피탄되었을 때 구멍을 메워주는 ‘자동 방루 탱크(Self-sealing tank)’도 없앴습니다.

② 압도적인 항속 거리와 기동성

이 뼈를 깎는 경량화 덕분에 제로센은 괴물 같은 성능을 얻었습니다.

  • 항속 거리: 보조 연료 탱크를 달면 3,000km를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전투기들의 3배 수준)
  • 선회력: 날개 하중이 매우 낮아, 공중에서 뱅글뱅글 도는 선회전(Dogfight)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미군 조종사들은 “절대 제로센과 선회전을 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받았습니다.

③ 20mm 기관포의 화력

당시 전투기들이 소구경 기관총을 쓸 때, 제로센은 날개에 20mm 기관포 2문을 달았습니다. 초탄 명중 시 미군 전투기나 폭격기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었습니다.


3. 영광과 몰락: 제로 쇼크에서 칠면조 사냥까지

👹 제로 쇼크 (Early War)

전쟁 초기, 제로센은 무적이었습니다. 필리핀, 진주만, 동남아시아 하늘에서 연합군 전투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습니다. 연합군은 이 정체불명의 전투기에 **’제로(Zero)’**라는 코드명을 붙이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 아쿠탄 제로와 약점 노출

하지만 영광은 짧았습니다. 1942년 알류샨 열도에 불시착한 제로센 1대를 미군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노획합니다(아쿠탄 제로).

  • 미군은 제로센을 뜯어보고 경악했습니다. “세상에, 장갑판이 하나도 없어? 그냥 날아다니는 라이터잖아!”

📉 몰락: 헬캣의 등장과 카미카제

미군은 제로센의 약점(속도가 느리고, 맷집이 약하며, 급강하 시 기체가 굳어짐)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잡기 위해 F6F 헬캣F4U 콜세어를 투입했습니다.

  • 원 샷 라이터: 미군기가 쏜 12.7mm 총알 몇 방만 스쳐도 제로센은 여지없이 불타올랐습니다.
  • 숙련병의 손실: 방어력이 없다 보니 피탄되면 조종사가 즉사했습니다. 베테랑 조종사들이 다 죽고 나자, 제로센은 그저 ‘날아다니는 표적’이 되었고, 결국 전쟁 막바지에는 자살 특공대(카미카제)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 미쓰비시 A6M2 (21형) 제원

  • 승무원: 1명
  • 길이: 9.06 m / 날개폭: 12.0 m
  • 엔진: 나카지마 사카에 12형 공랭식 엔진 (940 마력)
  • 최고 속도: 533 km/h
  • 항속 거리: 약 3,105 km (보조 연료탱크 장착 시)
  • 무장: 20mm 99식 기관포 2문 (날개), 7.7mm 97식 기관총 2정 (기수)
  • 별명: Zeke (연합군 코드명), 0전(레이센)

마무리하며

미쓰비시 A6M 제로센은 ‘일본도(Katana)’ 같은 비행기였습니다. 예리하고 날카로워 상대를 베기엔 좋았지만, 내구성이 약해 조종사 보호게 취약했다. 총탄이 비행기체를 관통해 조종사가 사망하거나 기체가 쉽게 파손 되었다.

“사람의 목숨보다 비행기의 성능을 우선시했던” 당시 일본 군부의 그릇된 철학이 빚어낸,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결말은 비극적이었던 걸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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